
도착하자마자 지난주에 만든 벨지안 IPA를 정성껏 병입하고, 오늘 새로 만들 맥주의 당화를 시작하며 중급반 마지막 4주차 수업의 문을 열었다. 이번 주차는 맥주를 평가하는 기준과 매니악한 매력을 가진 사워 맥주(Sour Beer)의 이론을 깊게 파고든 시간이었다.
1. 맥주 전문가의 길: BJCP vs Cicerone
수제맥주 업계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자격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목적과 필요한 역량이 다르다.
| 구분 | BJCP (Beer Judge Certification Program) | Cicerone (씨서론) |
| 주 목적 | 맥주 대회 심사관 | 펍 매니저, 맥주 가이드 |
| 핵심 역량 | 맥주 양조 지식, 미세한 풍미 평가 능력 | 드래프트 맥주 시스템 관리, 푸드 페어링 |
| 특징 | 미국의 비영리 단체에서 운영 | 접객과 서비스 실무에 강점 |
2. 전 세계 맥주의 나침반, BJCP Style Guideline
BJCP 가이드라인은 전 세계에 비중 있게 존재하는 맥주 스타일을 조사하고 규격화한 자료다. 최신 버전은 2021년판(이전 2008년, 2015년)이며, 시대의 흐름과 유행에 따라 계속 업데이트된다.
(예: 뉴잉글랜드 IPA는 2008년엔 언급조차 없었지만, 2015년 특수 IPA로 등록된 후 2021년 정식 스타일로 승격되었다. 다음 업데이트는 2028년으로 예상된다.)
맥주를 평가하는 5가지 세부 항목
- Aroma (향): 맥아, 홉, 효모, 부재료의 향 및 이취(Off-flavor)의 유무와 밸런스
- Appearance (외관): 색상, 탁도, 거품 유지력
- Flavor (맛): 원재료의 맛, 쓴맛(비터), 산미, 이취 등 입안에서 느껴지는 풍미
- Mouthfeel (질감): 무게감(바디감), 탄산감, 부드러움, 떫은맛
- Overall Impression (총평): 해당 맥주에 대한 전반적인 요약 (예: 산뜻함, 묵직함 등)
가이드라인 문서 읽는 법
- Comments: 운영자들의 첨언 (해당 스타일에 대한 깨알 TMI)
- History: 맥주 스타일의 유래와 발자취
- Characteristic Ingredients: 요구되는 기본 재료 조합과 양조법
- Style Comparison: 유사 스타일과의 비교 (예: 스타우트 vs 포터, 필스너 vs 헬레스)
- Vital Statistics: 맥주의 스펙 범위 (O.G, F.G, IBU, ABV, SRM)
- Commercial Examples: 해당 스타일의 표본이 되는 상업 맥주 브랜드
3. 효모가 만드는 발효의 맛
일반적으로 "에일(Ale)은 발효 시 과일 향 등 효모 특유의 맛이 난다"고 알려져 있다.
- 에스테르 (Ester): 효모 발효 시 생성되는 과일 맛
- 페놀 (Phenol): 효모 발효 시 생성되는 향신료 맛
하지만 미국 에일 효모 중에는 특징을 드러내지 않는 '중립적 효모(Neutral Yeast)'도 존재한다. Hazy IPA에는 어느 정도 발효 향이 필요하지만, 웨스트 코스트 IPA 같이 홉의 캐릭터가 터져야 하는 깔끔한 맥주에는 중립적 효모가 쓰인다. 효모 발효 맛이 거의 없는 깔끔한 에일이 만들어지다 보니, 라거와 큰 차이가 모호해지면서 한때 미국 시장에서 'India Pale Lager(IPL)'가 유행하기도 했다.
4. 야생의 산미, Sour / Wild Beer의 원리
사워 맥주에 신맛을 입히는 방법과 그에 관여하는 미생물들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
사워 맥주를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
- 신맛이 있는 과일 넣기: 신선한 과일 껍질의 자연 균(Lacto, Pedio 등)을 이용하거나, 구연산(Citric Acid)을 품은 과일을 배럴에 함께 넣어 산미를 증폭시킨다.
- 배럴 에이징: 사워 맥주를 담았던 배럴이나 사워 균이 서식하는 배럴에 맥주를 숙성한다. (버번위스키 배럴처럼 사워 균과 상관없는 통에 숙성한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사워 맥주가 아니다.)
산미를 만드는 미생물들
- Lactobacillus (락토바실러스): 당을 발효해 다량의 젖산을 만드는 젖산균. 홉의 알파 애시드(쓴맛)에 매우 취약해 15 IBU도 견디기 힘들다. (발효 온도: 18~45도)
- Pediococcus (페디오코쿠스): 락토보다 홉에 대한 내성이 강해 과거엔 오염균으로 인식되었다. 발효 시간이 오래 걸리며, 오염 시 산미와 함께 버터 향(디아세틸)을 뿜어낸다.
- Acetobacter (아세토박터): 흔히 식초를 만드는 초산균. 산소와 만나 알코올을 아세트산으로 바꾼다. 특정 스타일에서는 연한 식초 풍미로 허용된다.
- Brettanomyces (브렛): 야생 효모(Wild Yeast). 단독 발효도 가능하지만 사워 박테리아와 섞어 쓰면 시너지가 좋다. 특히 페디오코쿠스와 결합하면 불쾌한 버터 향(디아세틸)을 줄여주는 훌륭한 파트너가 된다.
퀵 사워 (Quick Sour Beer) 방식
맥즙이나 발효된 맥주에 직접 젖산(Lactic Acid)을 투입해 간편하게 신맛을 내는 방식이다. 초보자의 경우 발효 후 젖산을 투입하며 미각으로 산도를 맞추는 것이 안전하다.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동치미 국물 피니쉬' 같은 인공적인 산미가 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존재한다.
(※ 주의사항: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공방에서는 다른 맥주를 오염시킬 위험이 크기 때문에 사워 맥주 양조는 절대 금물이다!)
중급반 과정을 마무리하며
세종에서 서울의 공방까지 오가며 들었던 중급반 4주차 과정이 이렇게 끝이 났다. 매주 새로운 지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흥미로운 시음을 경험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막상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니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곧 둘째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라 당분간은 장거리를 이동 하며 강의를 듣기 어렵게 되었다. 아쉽지만, 당분간 집에서 혼자서라도 다양한 책을 읽고 미각을 훈련하며 실력을 다져야겠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홈브루잉 상급 과정도 들어보고 싶다. 그때까지 초급과 중급에서 배운 소중한 지식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체화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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