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달 만에 드디어 맥주 양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도 태어나고 그동안 정말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청주에 있는 아는 형님이 운영하고 계신 공방을 빌려서 맥주를 만들었다. 여기서도 작년인가 두 번 정도 양조를 했었다. 아이홉 공방 형님이 한 번, 홀리데이 브루어리의 명윤님께서 한 번씩 알려주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재료는 서울홈브루에서 주문했다. 깜빡하고 파쇄 요청을 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공방에서 밀링을 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당탕탕의 연속이었다. 내가 최근에 가장 많이 양조했던 한국맥주교육원에서의 양조 환경과 많이 달랐기 때문에 헷갈리는 것들이 많았다.
형님이 도와주신다고 당화조에 물을 올려주셨는데 15리터 정도를 담아주셨다. 그리고 스파징 워터를 한 20리터 정도 끓이셨다. 한맥원에서는 26리터 정도로 시작해서 스파징 워터를 3~4리터 정도 채웠던 거 같다.
찾아보니 두 개 다 다른 스타일이었다. Brew in a Bag(자루 양조) 스타일로 하면 26리터로 하는 게 맞았고, 3-Vessel(쓰리 베셀)로 하면 14리터 정도씩 끓여서 반반으로 진행하는 거였다. 근데 보통 상업 양조나 홈브루에서는 쓰리 베셀로 많이 진행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그냥 그렇게 진행했다.
당화를 마치고 라우터링을 하려고 하다가, 당화조를 살짝 옆으로 틀어서 받는 게 각도가 잘 나오겠다 싶어 아무 생각 없이 당화조를 잡고 옮겼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내가 너무 세게 들어서 옮긴 것 같다.

그로 인해 그레인 베드가 좀 깨졌는지 생각보다 여과가 잘 안되었다. 여기서부터 좀 멘붕이 와서 다시 패들로 아래를 저어주고, 스파징 워터를 좀 추가한 뒤 기다렸다가 다시 빼는 과정을 거쳤다. 그래도 어찌저찌 목표한 양인 24리터 정도를 받아서 보일링을 시작했다.

홉 스케줄은 60분에 비터용 모자익 8그램을 넣고, 5분에 심코랑 모자익 14그램씩 총 28그램을 넣은 뒤, 칠링을 시작하여 82도에서 심코 42그램, 모자익 38그램을 넣어 20분간 홉 스탠드를 하는 것이었다.
60분 호핑을 하고 나서 장비들을 미리 준비하는데 비중계가 안 보였다. 아무리 찾아봐도 공방에는 없었는데, 형님에게 전화해 보니 없다고 하셨다... 깨지거나 잃어버리셨다고. ㅜㅜ
그래서 그냥 이번에는 연습이라 치고 비중 안 재고 가봐야겠다 했는데, 다행히 형님의 아는 지인이자 작년에 홈브루잉을 같이 해주신 홀리데이 브루어리의 명윤님에게 급하게 연락을 드렸고, 다행히 남는 비중계가 있어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5분 호핑까지 시간이 40분 정도 여유가 있었기에 내가 직접 차를 타고 가서 비중계를 받아왔고, 그 김에 홀리데이 맥주도 몇 개 살 수 있었다. 지난번에 맛있게 먹었던 얼그레이 윗비어 '무형'과 뉴잉글랜드 페일에일이었나 처음 보는 맥주가 있어 몇 병 집어왔다.
그렇게 시작 13분 정도 전에 도착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칠러도 10분 전에 소독해야 하니 딱 좋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이상해서 보니 보일링 하는 끓임 솥에 온도계가 없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칠링을 하지? 처음부터 온도계가 달린 끓임 솥으로 보일링을 했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며 급하게 탐침형 온도계를 찾아봤지만 없었고...
나는 과감하게 불을 끈 뒤 온도계가 달린 솥으로 맥즙을 옮겨 담았다. 허리도 아프고 땀도 삐질삐질 났지만, 어떻게든 맥주는 완성해야 했기 때문에 순간순간의 판단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10분 전에 칠러를 소독시키고 5분 호핑을 한 뒤, 칠링을 시작하며 82도에 맞춰 홉 스탠드를 20분간 진행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최종 칠링을 하는데 생각보다 칠링이 너무 오래 걸려서 쉽지 않았다. 열심히 저었는데, 한맥원에서는 25도에 효모를 피칭했지만 제미나이도 그렇고 형님도 20도라고 말씀해 주셔서 20도까지 최대한 낮춰봤다. 근데 마지막엔 진짜 너어어어무 오래 걸려서 결국 23도 정도에 칠러를 뺀 거 같다.
홉 찌꺼기가 많을 것 같아서 채반을 대고 아래 밸브를 열어 발효조에 옮겨 담는데, 조금 나오다가 안 나온다... 홉 찌꺼기가 많아서 막힌 것 같았다. 여기서 또 멘붕이 왔다. 하지만 맥즙은 옮겨야지...!
결국 발효조를 바닥에 놓고, 왼손으로 채반을 대고 오른손으로 끓임 솥을 들어 얹은 다음, 오른발로 발효조 바닥을 밀어 올려 조금씩 부어주었다. 근데 홉 찌꺼기가 워낙 많아서 채반이 금방 막혔고, 나는 아주 조금씩 붓고 채반을 씻고 다시 붓기를 한 5번 이상 반복한 것 같다. 이때도 역시 땀이 삐질삐질 났다.

그렇게 효모를 넣고 뚜껑을 닫고 에어락을 딱! 꽂았는데 에어락에 금이 가 있네? 다시 빼서 다른 걸로 바꾸고 소독 다시 하고 다시 꽂고! 드디어 발효고에 완성된 맥즙을 넣을 수 있었다.
첫째 하원 시간은 다가오고... 마지막에 너무 멘붕에 빠졌는지 시계를 보니 이미 3시 20분이 되어 있었다. 4시까지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데 지금 출발해도 늦는데 어쩌지? 전화는 4통이나 와있었다.
고마운 아내가 대신 하원을 가주기로 했다. 감사하다.
맥즙 온도가 식기 시작하면 잡균에 감염될 위험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너무 정신없이 초집중해서 진행을 했고, 그래서 시간이 가는 줄 아예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진짜 첫 독립 양조는 우당탕탕 그 자체였다.

그래도 초기 비중(OG)은 레시피대로 1.049에 딱 맞게 나왔다. 효모가 제 역할만 잘해준다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겠지? 첫 맥주가 너무 기대된다.
이번에 진짜 배운 점이 많다. 아직 손에 익으려면 몇 번은 더 해봐야겠다.
그리고 이번에 해보니 집에서도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리터용 장비들도 파는 걸 보니 왠지 할 수 있겠는걸? 발효용 냉장고 같은 것만 구할 수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한번 도전해 보자! 다음 양조는 더 나아질 거라 믿는다. 100번 정도 하면 고수가 되어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