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만에 찾아온 강의실

 

Prologue. 양조는 감을 잃으면 안 된다

어느덧 홈브루잉 3주차 강의 날. 설 명절 연휴 덕분에 한 주를 쉬고 2주 만에 서울 공방을 찾았다. 고작 한 주 쉬었을 뿐인데, 막상 장비 앞에 서니 양조 과정이 가물가물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하는 건 역시 다르다. 그래도 하나씩 차근차근 짚어가다 보니 다행히 다시 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Part 1. 지난주 결과물: 흑맥주 '포터(Porter)' 병입

 

가장 기다렸던 시간. 지난주 땀 흘려 끓였던 묵직한 흑맥주, **포터(Porter)**의 결과물을 확인하는 날이다.

  • F.G (최종 비중) 체크: 1.016
    • O.G (초기 비중): 1.058 -> F.G (최종 비중): 1.016
    • 예상 알코올 도수: 약 5.5%
  • 병입 과정: 이번에는 소독부터 설탕 투입, 병입까지 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직접 주도해서 해봤다. 두 번째라 그런지 확실히 손에 익은 느낌이다. 다음 주에는 나만의 라벨링 작업도 제대로 해보고 싶다.

  • 오늘의 관전 포인트 (눈치게임): 이번에도 총 15병이 나와서 동기 4명 중 1명은 3병만 가져가야 했다. 지난주에 '마지막 병(죽은 효모가 섞여 유독 쓴맛이 났던 전설의 바틀...)'을 가져갔다가 쓴맛의 쓴맛을 봤기에, 이번엔 차라리 양보하고 상태가 가장 좋을 중간 번호 위주로 3병을 챙겼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내 새끼(?)들을 안전하게 가방에 챙겼다. 일주일 뒤 탄산이 꽉 차오른 포터는 과연 어떤 맛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Part 2. 이론: 맥주 맛의 뼈대, '물'과 '보관'

오늘 이론 수업의 핵심은 맥주의 상미기한과 **'물(Water)'**이었다. 예비 브루어로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심화 내용들을 정리해 본다.

1. 상미기한(Best Before)과 콜드체인

  • 살균/여과를 거치지 않은 생맥주(홈브루 포함)의 상미기한은 45~90일 정도이며 무조건 냉장 보관이 필수다.
  • 반면, 카스 같은 대기업 맥주나 살균 처리가 된 맥주는 6~12개월까지 실온 보관이 가능하다. (주류 트럭이 햇빛 아래 맥주를 싣고 달릴 수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 패키징부터 내 입에 들어올 때까지 저온을 유지하는 '콜드체인' 시스템이 수제맥주의 생명인데, 아직 우리나라에 완벽히 대중화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2. 물의 화학 (pH와 미네랄) 물 맑은 곳에서 무조건 좋은 맥주가 나오는 게 아니다. 양조사는 의도적으로 물의 성질을 디자인해야 한다.

  • 적정 pH: 당화(Mashing)에 가장 적합한 pH는 5.2~5.5. 이 범위를 벗어나면 양조 효율이 떨어지고 산미가 튀는 등 맛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완성된 맥주의 pH는 보통 4.0~4.5 정도다.
  • 경수 vs 연수: * 칼슘/마그네슘이 적은 연수: 가볍고 부드러운 맥주(예: 체코 필스너)에 적합.
    • 미네랄이 많은 경수: 효모 발효를 돕고 쌉쌀한 맥주(예: 영국식 에일, IPA)에 유리.
  • 수질 조절: 옛날에는 지역의 수질이 맥주 스타일을 결정했지만, 현대에는 순수한 정수물에 화합물(석고, 염화칼슘 등)을 타서 원하는 물을 '조립'해서 쓴다. 캠덴 태블릿, 효모 영양제 등 맥주에 들어가는 부원료의 세계가 이렇게 깊은 줄 미처 몰랐다.

Part 3. 실전 양조: 하이브리드 맥주 '쾰시(Kölsch)'

 

이론을 마쳤으니 다시 소매를 걷어붙일 시간. 이번 주 도전 종목은 독일 쾰른 지방의 하이브리드 맥주, **쾰시(Kölsch)**다. 에일 효모로 발효하지만 라거처럼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레시피 포인트]

  • 맥아: Pilsen Malt (4kg) / Carahell (0.5kg) - 깔끔하고 밝은 베이스
  • 홉: Perle, Fuggles, Hallertau Tradition - 유럽산 노블 홉 믹스
  • 효모: Mangrove Jack - California Lager M54

[양조 과정 속 좌충우돌] 양조는 변수의 연속이다. 오늘도 역시 평탄치만은 않았다.

  1. 당화 (Mashing): 원장님이 미리 데워두신 물 온도가 70도를 훌쩍 넘어가 버렸다. 찬물을 붓고 하단 레버로 물을 빼내며 채망으로 휘저어서 금방 65도 정도로 맞추셨다. 아마 나 혼자였다면 당황했을듯하다. 
  2. 보일링 (Boiling): 끓어 넘치는 걸 막으려고 옆에 선풍기를 틀어뒀는데, 하필 배터리가 방전되면서 맥즙이 살짝 끓어 넘치고 말았다. 이것도 역시 변수 ㅋㅋ 
  3. 칠링 (Chilling): 날씨가 제법 풀려서 그런지 냉각에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겨울이 이 정돈데, 한여름에는 칠링 하다가 진이 다 빠질 것 같다.
  4. 치명적인 헷갈림: 1차 맥즙을 뽑아낼 때, 이 맥즙을 발효조에 담아 용량을 체크해야 할지 바로 끓임조에 넣어야 할지 순간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결국 원장님께 물어봤다. 다음엔 가기 전에 무조건 복습이다.

Part 4. 시음 (Tasting): 혀로 익히는 실전 감각

수업의 꽃, 시음 시간! 6가지 맥주를 마시며 나만의 테이스팅 노트를 끄적여봤다.




홉스플래쉬 (NEIPA): 밝은 금색에 파인애플 주스 같은 탁도. 향은 완전 달콤한 파인애플인데, 막상 마셔보면 과일 맛보다는 홉의 씁쓸함이 강렬하게 때린다. 반전 매력.


로스트코스트 바닐라라떼 (밀크 스타우트): 짙은 검은색. 향부터 강력한 바닐라 라떼와 로스팅 커피 향이 진동한다. 바디감이 묵직하고 고소한데, 향에 비해 끝맛이 끈적하게 달지 않아 여러 모금 마셔도 물리진 않았다.


라디오 미네르바 (벨지안 트리펠): 보통의 탁도와 금빛. 강렬한 홉 향 대신 특유의 소다 향이 난다. 탄산이 꽤 강하고 거품이 풍성한데, 묘하게 '맥콜' 같은 뉘앙스가 느껴져서 무척 신기했다. 벨기에 효모의 에스테르 파워를 다시 한번 체감했다.


 

Epilogue. 마지막 주를 향하여

 

세종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는 피곤해서 곯아떨어졌지만, 막상 공방 문을 열고 맥아 냄새를 맡는 순간 피로가 싹 가신다. 고되지만 너무 재밌고 행복한 시간이다.

양조 지식과 시음 감각이 조금씩 뼈대에 살을 붙여가며 성장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다음 주는 대망의 4주차(마지막 주)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그리고 좀 더 능숙한 예비 브루어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가기 전에 꼭 복습을 철저히 하고 가야겠다.

집에 모셔둔 포터도 일주일간 잘 숙성시켜서 맛있게 첫 잔을 따라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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